Saturday, October 28, 2006

An Ode for St. Cecilia's Day

Handel, An Ode for St. Cecilia's Day, Carolyn Sampson / James Gilchrist, (The) King's Consort/Robert King, Hyperion New CD

* 성 세실리아 기념일이 생일인 조카 이강슬 세실리아를 위해서...
* John Dryden (1631-1700) at Gutheger Project, http://www.gutenberg.org/browse/authors/d#a807

중세 시대의 문헌인 The Golden Legend에서 성 세실리아는 문헌적으로 처음으로 언급된다. 이 책에서 성 세실리아가 어떻게 기독교 역사에서 음악 수호성인이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아직까지도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5세기 동안 성 세실리아는 가수이자 오르간 연주자로서 인식되었으며 (기독교 역사에서는 그녀는 오르간의 발명자 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들이 그녀를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 지금의 추정이다.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성 세실리아를 위한 시는 17세기에 하나의 주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가 가지는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때 Dryden의 두 시들을 능가하는 시들은 없다는 것이 요즘의 중론이다. 교회 음악의 수호성인인 세실리아를 기리기 위한 시를 위해 Dryden은 그녀의 이름에서 유추되는 모든 음악적인 것들을 언어로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무척 고심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Song for St Cecilia's Day를 쓴 것은 1687년의 일이며, 이것이 시인이 살아있던 시기에 여러 음악가들에 의해 주목을 받고,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사에서 종교 음악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품을 보여준 헨델의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시인 자신에게는 불운스러운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헨델이 작곡한 스코어들 가운데서 하이라이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Dryden의 두번째 stanza인 'What Passion cannot Musick raise and quell!''. 여기서 특별히 헨델은,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 문학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인, 존슨 박사가 시적 상상력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것들 최고라고 불렀던 그 텍스트에 감정이 풍부한 첼로 obbligato를 매치시키고 있다.

음악 레코딩 역사에서도 이 작품은 지난 20세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Anthony Bernard가 지휘한 레코딩에서 들려준 뛰어난 오보에/첼로 솔로, Felicity Palmer가 돋보였던 아르농쿠르의 1979년 레코딩이나 87년의 Pinnock의 레코딩들.

이 작품은 헨델이 Dryden의 Alexander's Feast에 자신의 곡들을 붙였던 작품들을 꾸준히 레코딩한 로버트 킹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레코딩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1736년 공연당시 interlude로 사용된 테너 칸타타인 "Look Down, harmonious Saint" 대신 이탈리아어 칸타타인 Volgi un sguardo가 연주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Trevor Pinnock가 87년 녹음에서도 발견되는데 현재는 헨델 자신이 3년 후에 Dryden의 Ode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Volgi un sguardo 를 Dryden의 작품과 이 이탈리아어 칸타타를 매치 시켰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생각이다.

이 작품은 종교 음악에 있어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던 Handel의 작품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중의 하나인 Ode for St. Cecilia's Day를 맛깔지게 연주한 작품이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각각 솔로 파트 연주자들의 뛰어남이다. "Loud clangour"에서의 트럼펫, The soft complaining flute"에서의 플룻, "What passion cannot Music raise and quell!"에서의 첼로 솔로는 무척 섬세한 연주를 보여준다. 비록 Pinnock의 레코딩에서 Anthony Rolfe Johnson의 recitative는 평생을 두고 기억될만한 절창이지만, King's Consort and Choir 역시 헨델의 화려한 이 ode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James Gilchrist은 이 작품에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며, 적어도 이 작품내에서는 Rolfe Johnson과 어깨를 견줄만한 절창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 레코딩은 현존하는 영국의 고음악 소프라노가들 가운데 당연히 최고인 Carolyn Sampson을 위한 레코딩이라 부를 수도 있다. 특히 Matthew Halls의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와 함께한 그녀의 "But oh! what art can teach"는 놀라운 절창이며, 이는 이 레코딩이 "어쩌면 그녀 자신만을 위한" 레코딩일 수도 있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게 할수도 있다. (그녀의 절창은 올해 역시 로버트 킹과 함께 녹음한 Mozart의 Exsultate Jubilate에서도 쉽게 발견된다.top C에서 끝맺음을 하는 그녀의 절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만드는 대목이다.)

여지까지, Robert King이 내놓은 여러 레코딩들과 더불어 이 작품 역시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런 레코딩이 아니며, 뛰어난 레코딩이다. 하지만, King뿐만 아니라, 다른 지휘자들의 이 레코딩을 들을때 마다 느끼는 것은, 헨델의 시대에 소년들의 합창이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소년들의 합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But oh! what art can teach, Carolyn Sampson (sop), MAtthew Halls(org)

Thursday, October 26, 2006

오늘

경사가 겹친 날이다.
박정희가 대가리에 총 맞어 죽은 날, 책 한권을 끝냈다.

Wednesday, October 25, 2006

Cicero's Practical Philosophy

알아 듣지는 못하겠지만..
가끔씩 이 학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몇가지 일들.

http://www.nd.edu/~ndwap/events.htm#cicero

Tuesday, October 24, 2006

3 Sirs

Sir Isaiah Berlin -The Roots of Romanticism, Three Critics of The Enlightenment.
고귀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우파가 중시하던 고귀함이라는 것, 이제서야 가닥이 잡히네.

Sir R. G. Collingwood -
The New Leviathan: Or Man, Society, Civilization and Barbarism, The Idea of History
"But war, says Thucydides, is a stern teacher. The wars of the present century have taught some of us that there was more in Hobbes than we had supposed... My own book is best to be understand as an attempt to bring the Leviathan up to date, in the light of the advances made since it was written, in history, psychology, and anthropology... what I should now describe as a new form of barbarism"
나 같이 쌍스러운 놈도 충격을 받는데,
고상한 이였으니, 야만주의에 이래저래 충격을 받았겠지.

Sir
Francis MacDonald Cornford -From Religion to Philosophy-
역사학과에서 내기도 그렇고, 철학과에서 내기도 그렇고, 종교학과에서 내기도 그렇고...
똑 부러진 우파는 공부 하나는 제대로 한다니까...

그런데 참 열심히들 썼네. 써들은 원래 뭘 그렇게 써야하나?

Monday, October 23, 2006

휴가

돌아오자마자, "언제 공부할거냐?" 라고 갈구는 이들이 있다.
고마운 노릇이다.

Tuesday, October 17, 2006

The Weeping Meadow, 2004

Trilogia I: To Livadi pou dakryzei, Directed by Theo Angelopoulos, 2004

끝을 알수 없는 떠돌음, 열정 그리고 유랑을 감싸안는 그리스의 신화들, 모든 신화속에서 사랑의 상징이었으며, 자신또한 절대적인 사랑을 쫓는 Eleni를 여 주인공으로 배치시키는 감독의 능력. 하지만 단순한 역사적 맥락속에서의 무미건조한 신화의 재생이 아닌 까닭에, 헬레니즘 신화를 모르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영화를 이해하게 만드는 감독의 능력.

최면을 거는 마술적인 긴 여행 행렬, 일체의 디지탈 효과를 배제한채 완성된 수많은 장면들, 수백장의 하얀 천들이 크게 굽이치는 장면들, 난민들의 임시 거주처를 위해서 사용된 오페라 하우스, 대 규모의 장례행렬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검은 깃발을 매달고 출렁이는 보우트들. 수해를 입는 마을을 표현하게 위해 실제로 사용된 어마어마한 양의 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빨간색 드레스, 그 어떤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상황. 어디에나 발견되는 물.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사랑 마저 신 세계로 던져 버리는 거대한 물. 자연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

잠시 잊고 있었던 1919년, 러시아 혁명 그리고 Odessa의 악몽들, 다시한번 느끼게 하는 역사의 무게, 아직은 불명확한 오디세이. 그리스 비극이라면, 그리스 비극이라면 오이디푸스 같이 눈을 찌를 망정 타협하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작은 바램.

시작이 괜찮은 삼부작의 첫번째 작품.

p.s : 영화음악을 사야 하나?

Friday, October 13, 2006

읽은 책 몇권, 찾은 책 몇권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제대로 즐길려면, 영문본으로 꼭 읽어야 한다는 강양의 권유에 따라...
번역본을 읽어, 험버트의 여정을 쫓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여전히 제대로 즐기는 것은 어렵다.
여전히...

소설과 카메라의 눈, 앨런 스피겔
이런 책을 읽으면 그 동안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공부는 부족하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나치체제에 대한 훌륭한 참고서
------------------------------------------------------------
금요일 오후 부터 토요일까지 꼭 하는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새로운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일라딘에서 발견한 책들이다.
도서관에서 일단 빌려서 읽어봐야겠다.

Mozart by Peter Gay
뛰어난 계몽주의 연구자이자 프로이트 연구자인 피터 게이의 모짜르트의 전기다.
피터 게이의 책은 "부르주아 전 (Schnitzler's Century: The Making of Middle-Class Culture 1815-1914)"를 읽은 것과 "계몽주의"를 읽다 그만 둔 것이 전부다.
워낙 똘똘한 역사가니, 그의 책을 사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드디어 나왔다. 영문본과 비교하며 "제대로" 읽어볼 기회다.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조르주 뒤비
혹시나 해서 봤더니, 가격이 심하다.

도구적 이성 비판, 호르크하이머
"읽어 봐야지" 하며 돌아서면 잊던 책.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책들은 일단 문장이 어렵지 않다.
요즘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고 파멸로 이끄는 도구적 이성"에 대해서 생각 중.

마르크스 평전, Jacques Attali
제목에 혹 했으나, 곧 포기

모팽 양, 테오필 고티에
이름만 들어봤던 고티에의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읽어봐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어흑.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헤르더
벌린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비코/헤르더.
이제부터 "제대로" 알아보자.

Thursday, October 12, 2006

오르한 파묵

노벨 문학상, 오래전에 신경끊고 살았다.
오르한 파묵이 올해 노벨 문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신문기사가 그를 다시한번 떠올리게 하다.
터키가 인류문명에 기여한 가장 큰 업적인 세밀화, 그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해준 "내 이름은 빨강"에 감사하며...

http://nobelprize.org/nobel_prizes/literature/laureates/2006/

BBC

AVERROES
BBC
http://www.bbc.co.uk/radio4/history/inourtime/inourtime_20061005.shtml

In The Divine Comedy Dante subjected all the sinners in Christendom to a series of grisly punishments, from being buried alive to being frozen in ice. The deeper you go the more brutal and bizarre the punishments get, but the uppermost level of Hell is populated not with the mildest of Christian sinners, but with non-Christian writers and philosophers. It was the highest compliment Dante could pay to pagan thinkers in a Christian cosmos and in Canto Four he names them all. Aristotle is there with Socrates and Plato, Galen, Zeno and Seneca, but Dante ends the list with neither a Greek nor a Roman but 'with him who made that commentary vast, Averroes'. Averroes was a 12th century Islamic scholar who devoted his life to defending philosophy against the precepts of faith and in writing a commentary on Aristotle so influential that St Thomas Aquinas referred to him simply as 'The Commentator'.

신곡 정도는 기본 나가리다, 이거지?

Tuesday, October 10, 2006

몇가지

처음으로 Solomon/Saul을 연속해서 들어보다.
따로 들을때 와는 다른 느낌.
그래도 그 동안 공부 좀 했다고,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건 그거고..
Susan Gritton의 Capricious man!은 새로운 발견.
남들이 좋다고 말할때는 항상 시큰둥. 꼭 뒷북.
Rene Jacobs가 Solomon 레코딩 해준다면야 좋겠지만...
그런데 이거 할짓 아니다.
씨디 6장을 연속으로 집중해서 듣는 것. 어흑.

친구와 함께 베니스의 죽음을 디브디로 보다.
깨끗한 것,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전의 왜곡된 화면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대신 더크 보가드의 연기를 제대로 볼수 있었다.
새삼, 그의 영민한 연기가 좋았다.

영국에서 강양의 추천사와 함께 온 Tim Robison의 Connemara: Listening to the Wind.
가을 방학때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다.
"If there is an occasional reluctance to waste research, you forgive it on the basis of the author's passionate engagement. Long-forgotten histories are recovered on every page. Lost chronicles unfurl from a bend in a wall. Robinson makes this elusive and extraordinary place legible without ever once exploiting it or compelling it to conform. This is a book that does justice, in every sense of that phrase, to the frequently betrayed people whose stories it incarnates, and to their strange and beautiful corner of the world."

친구와 북한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가 갑자기 일어나 외웠던 파우스트의 한 구절.
"Du hast sie zerstort,
Die schone Welt,
........
Baue sie wieder,
In deinem Busen baue sie auf"
그런데 아직도 무슨 연관성이 있기에, 이 구절을 외웠을까 하는 의문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Monday, October 09, 2006

북핵

1. 핵 실험 하는게 자주적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제 정신이냐?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핵을 생각했다는 것, 그 자체가 용납 안 되는 짓이다.

2. 핵 실험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이 와중에도 떼돈을 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3.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10/200610090783.html
"사즉생의 결의로 이 결단의 순간을 맞아야 한다."
눈물겹다. 조선일보.

Sunday, October 01, 2006

책 몇권

영국에서 강양이 꼭 읽어보라며 Martin Amis의 House of Meetings을 보내왔다.
http://books.guardian.co.uk/review/story/0,,1882801,00.html

전향서를 쓰지 않아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간첩인 서중식 선생의 옥중 서한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깡통 대학 초년생이 몸으로 느껴가며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성실한 사회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것이 바로 정신현상학이다.

Naoko가 보내준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을 다시 읽었다.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의 연결고리 때문에 읽게 된 것이었다.
"If this book, with its impressive philosophical argumentation and its controversial historical assumptions, serves to provoke this level of controversy, in the best traditions of Kraus himself, then the authors will have a performed a very valuable service"
-John W. Boyer-
친구들은 이런 것을 바랬으나, 아직은 내 공부가 부족한 탓에, 10분후에 포기하고 말았다.
역시..알고나 죽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Thoughts on Machiavelli.
Introduction 읽는 것만으로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얼마전 한 친구와 안티고네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느끼다.
프랑스 역사를 배울때,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지배할때 부터 배운다. 바로, 자신들이 로마안에 속했다는 자부심이다.
오이디푸스를 얘기하면서 단순히" 아들이 아버지 죽이고, 지 어미를 취한 인간이 그토록 좋으냐?"라고 얘기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책 안 읽은 티가 확~ 나는 족솔들이다.
닥치고나 있지.
하지만, 같지 않은 자존심이 허락 안 하겠지.

10월 3일은 풀란차스가 자살한 날이다.
"독자들은 맑스주의의 고전으로 명명된 것들과 관련된 모든 인용을 나의 이전 저작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저작에서 맑스주의의 고전을 인용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정통맑스주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신성한 교조와 텍스트를 지키는 사람으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텍스트로 나 자신을 치장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진정한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즉 나는 나 자신의 이름으로만 내가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
니코스 풀란차스, <국가, 권력, 사회주의> 서문.

서준식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진정 어려운 것은 지성의 획득이 아닌가보다.
그것을 획득한 지성이 어쩔 수 없이 몰고 오는 멜랑콜리의 극복인가 보다.

서준식 "옥중서한", 야간 비행, 2002

알고나 죽자.